저 자 | 배석만 | 발행연도 | 2021-08-31 | 권 호 | 제36집 제3호(통권 99호) |
첨부파일 | [제36집-3호]1970년대 대한조선공사의 옥포조선소 건설과정.pdf(444.52KB) |
본 연구는 박정희정권의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계기로 시작된 대한조선공사의 옥포조선소 건설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첫째, 수출용 대형유조선을 건조하는 전문조선소로 출발한 옥포조선소는 불황으로 다목적 조선소로 건설 방향을 바꾸었다. 이 과정은 대형유조선 전문 조선소 유지하려는 기업과 정부부담을 줄이려는 타협의 산물이었다. 둘째, 공사 중지를 포함한 전면적 구조조정 문제는1978년 대우조선으로 사업주체가 교체되는 시기가 아니라 1977년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다. 태스크 포스 회의가 열리고, 관련 실무 작업반까지 조직한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이이루어졌다. 셋째, 구조조정 검토의 결론은 대한조선공사가 건설공사를 계속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다. 세계 조선시장이 1980년 이후 회복될 것이며, 그 근거로 중소형 선박 시장의 확대, 이중벽 유조선 수요를 들었으나, 주지하듯이1980년대에도 세계 조선산업은 불황이 지속되었다. 이중벽 유조선 수요도 1990년대에들어서 점차 확대되었다. 재무부와 한국산업은행이 정확히 예측하여 공사 중지에 무게를실었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넷째, 1978년 사업 주체 교체는 정부 의도 보다는 대한조선공사의 공사 포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정부는 재벌그룹 현대, 대우와 교섭했으나, 현대에게는 사실상 거절당했고 대우에게는 대가로 특혜를 줄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옥포조선소 건설 사례로 볼 때, 1970년대 박정희정권의 중화학공업화정책 추진과정은 국가의 ‘계획의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통일되지 않았으며, 일관성이 없기도 하였고, 잘못된 판단에 의거하여 정책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기업 역시 일방적으로 정책에 끌려갔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 정책을 조정․조율하는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고,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